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최근 가장 즐겨 읽는 문학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것은 영화로 봤습니다.  다음으로 [성녀의 구제]는 소설로 읽었는데 본격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빠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녀의 구제]도 [백야행](알라딘, YES24, 인터파크)만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범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점이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붉은 손가락]을 읽었고, 이제 그 유명한(?) [백야행]을 읽었습니다.

[백야행]은 기본적으로 범죄 소설이지만, 작가는 탁월한 장치로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장치라는 것은 소설의 모든 장면에서 료지와 유키호는 함께 등장하지 않으며, 서로간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지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료지와 유키호 사이의 접촉과 감정을 공백으로 남겨두면서 독자 스스로가 가능한 대로 마음껏 둘 사이의 절절한 사랑과 지옥을 상상하도록 해두고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실제 삶이 어떻든 간에 지옥이었을 테고 그래도 지옥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살아 내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전모에 대해서는 1편 중반부부터 충분히 가늠할 수 있도록 해 두었지만, 결말은 예상이 어럽습니다.  결말이 다가올수록 두 사람이 과연 만날까?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두 사람 중에 누가 이 모든 것을 지속시키고 있을까?가 궁금합니다만 무엇 하나 명쾌하지 않고 끝나는 느낌을 줍니다.  여운을 남겨두는 방식도 탁월한 것 같습니다.

한국판 영화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손예진이 고수에게 고수의 생일날 '생일 축하해'라는 편지를 전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화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작에서는 오로지 'RK'라고 적힌 손수건 하나가 유키호가 료지에게 주는 단 하나의 선물로 나오거든요.  그외 어떤 교류가 있었을 법 하지만 원작에서는 전혀 나타나는게 없습니다.  그 점으로부터 역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끈질긴 인연의 끈과 서로간에 품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한국판 영화나 일본판 드라마는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작에서 과연 유키호는 상상력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사람을 조정할 수 있는 매력을 보여줍니다.  그 매력은 청순미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성적인 것에 의한 것도 아니고 심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매력도 아닌, 정말 기이하고 모든 것이 거짓인 악녀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료지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청순하며 헌신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강요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료지와 유키호가 잘 되길 바라는 연민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스스로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얀 어두움은 오로지 끝없는 어두움으로 변했습니다.

[덧붙여 10.07.25]
원작을 다 읽고 나서 한국판 영화를 보았고 지금 일본판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역시 둘 다 원작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나 극단적인 비극적 정서에의 공감이 확실히 덜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분은 먼저 원작을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본드라마는 원작과는 많이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갖췄다면, 영화는 원작과 드라마를 짜집기한 듯한..)

일본드라마 백야행

한국영화 백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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