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트 니어링 평전>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스코트 니어링의 20세기 100년의 삶이 현재 내가 처한 삶의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그만큼 모든 인간의 올바른 삶이 비슷한 색채를 띠는 것일까요?  하지만, 20세기 초반과 달리 더이상 사람들은 니어링이 자연으로 돌아간 그 자체만 관심이 있지 니어링이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덜해졌습니다.

나이 아흔다섯에 이르러 니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한 친구는 내가 말하는 것들이 그 전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참 유감스럽다."

1983년 8월 24일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인 아흔아홉 살 때, 니어링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한 세기 내내 뭔가 하려 했으나, 그 노력은 외형상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니어링은 <조화로운 삶>에 썼듯이, 어떤 일의 가치는 그것의 난이도나 성패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려는 비전과 계획, 결의, 인내, 노력, 투쟁에 있다는 것, 삶은 획득이나 축적보다는 꿈과 노력으로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스코트 니어링 평전> 중에서

한 세기에 이르는 그의 삶을 다룬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귀농 이후의 삶은 18 분의 1 정도만 할애되어 있으며, 나머지 대부부은 그의 젊은 시절에서부터 만년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주로 다룹니다. 

귀농하기 전까지 니어링의 삶은 자기가 신봉하는 이론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메인 농장에서의 조화로운 삶(=단순히 자연과 조화롭게 산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상과 생활이 일치된 삶을 말한다)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그것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책은 보여줍니다.  정말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었고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살이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각자 지향하는 가치관,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니어링이 지난한 투쟁 과정의 마지막에,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에 삶으로써, 그간의 방식과는 다른 소극적인 대중 전파력 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점, 공동체적 대안이 아니라 결국 개인적인 모델의 수립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점(미국 노동당에서 제명된 후 개인적인 자유를 위해 사회적 관계를 모두 끊어버렸습니다.)을 생각하면 치열하게 살았던 삶이 정말 눈물겹도록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니어링은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실패한 것일까요?  물론 그러한 소극적 저항 자체도 제게는 넘지 못하는 성채처럼 느껴지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니어링의 삶이 제게 보여주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또한 결과만을 바라보고 그 열매만 받아먹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만의 나무를 키워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면.. 결코 니어링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삶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조화로운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최소한의 가치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일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을 확장하여 성취감을 얻고, 고결함과 자존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다.
- 스코트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평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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